SPOT LIGHT

프로 클라이머, 윤여찬

Tuesday, September 24, 2024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26살, 10년 차 클라이머 윤여찬입니다. 현재 더클라임 세팅팀에서 근무하고 있고 병행해서 대회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을 처음 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나요?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한창 바둑을 두면서 프로기사를 준비했었는데, 그만두게 되면서 방황하던 시기에 조금 과격한 운동을 찾고 있던 도중 시작한 게 킥복싱과 클라이밍이었죠. 킥복싱은 스파링으로 발등이 아작나면서 그만뒀고요. 그다음이 클라이밍이었어요. 8년 동안 앉아서 바둑돌만 만지다 보니 조금 지겨웠었나 봐요. 원래는 샌님이었답니다. ㅎㅎ

레드포인트가 몇인가요?

볼더링은 북한산에 럭키(Lucky V12/13)요. 군대를 가기 전에 끝내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전역을 하고 끝내게 되었어요.

Fat Boy Slim - V10, 단양 올산천 [사진: 이승봉]
여찬 님이 생각하는 제일 좋은 암벽화는 뭔가요?

대회는 드라고 LV, 바위는 인스팅트 VSW요. 볼륨을 디딜 때는 드라고 만한 게 없어요. 그리고 바위 할 때는 인스팅트 VSW가 엣징이 견고해서 좋아요. 토훅 빼고는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Broken Gate - V12, 진안 운일암반일암 [사진: 조성찬]
‘DRY THE STONE’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 프리 윌리(V8, 모락산에 있는 볼더)를 처음 봤었거든요.

예전에 안산에서 운동할 때 형들이랑 영상팀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된 건데 서로 바빠져서 흐지부지해졌어요. 지금은 더 이상 업로드는 안 하고 있는데 나중에 다시 살려볼 생각은 있어요.

크루 활동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슴 크루에 소속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사슴 크루에도 속해 있지만 박쥐같이 이곳저곳 속해 있는 크루가 조금 있어요. 바랄 크루(bharal crew)라고도 있는데, 그 형들이 저를 멤버로 인정해 줄지 모르겠네요. ㅎㅎ 사슴 크루는 저희 친구들끼리 놀려고 만든 건데, 솔직히 크루 활동하는 동호인 분들이 부러워서 시작했었어요. 그러고 이거 말해도 되나? 춘식이 형은 싫어할 수도 있는데 딜리트 핑거라고 아세요?… (그리고 그는 말을 아꼈다)

상의는 조디악 플라넬 셔츠 by 블랙다이아몬드
세팅은 주 며칠 하나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 합니다.

세팅을 업(業)으로 하는 친구들 보면은 세팅 때문에 본인 운동을 하기 힘들어하더라고요. 프로젝트가 있어서 바위를 나가야 되는데 스킨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경우도 봤고요.

그래요? 저는 스킨이 좀 두꺼운 편이에요. 손끝에서 잼이 난다고 하죠? 전 잼 나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위클리 세팅 때는 많이 안 닳지만 TCBC(The Climb Bouldering Cup) 할 때는 얘기가 달라요. 특히 검증에 투자를 많이 해서 다섯 손가락이 다 아린 적이 있어요. 저희는 스킨보다도 체력이 안 돼서 운동을 못하는 게 더 커요. 홀드가 너무 무거워서 거의 노동에 가깝죠. 일산점이 진짜입니다. 저는 잘 안 가긴 하지만 거기 볼륨 중 제일 큰 거는 사람 두 명 이상이 들어야 해요. 그리고 저희는 외주 세터가 아니다 보니 세팅 후에 홀드를 치우는 것도 다 저희가 하니까 체력이 남아나질 않아요.

저는 여찬 님을 오래전 더 자스(The Jas)에서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해요. 분명 그때는 왜소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몸이 커져있더라고요.

거의 9, 10년 전인데, 안산에서 클라이밍 처음 하다가 왔을 때네요. 고등학교 1학년 끝날 때쯤에 팔꿈치를 다치면서 운동을 쉬면서 쪘어요. 갑자기 마른 거에 콤플렉스가 심하게 와서 일부러 많이 먹고 찌웠어요. 진짜 2시간마다 한 번씩 토가 나올 지경으로 먹었죠.

예전 몸무게랑 비교해 보면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어요?

중3 때 몸무게가 54kg이었고 고1 때 83kg까지 늘었어요. 키도 160중반에서 170중반으로 10cm 정도 컸고요. 어제 건강검진을 받고 왔는데 178cm 더라고요. 그때 그렇게 변하고 나서 사실 형이 저 못 알아볼 줄 알고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ㅎㅎ

그리고 제가 여태 많은 클라이머를 봐왔지만 그중 팔 근육이 아주 특출나더라고요. 따로 운동하는 게 있는 건지, 아니면 혹시… 근수저인가요?

근수저가 맞고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운동을 좋아하시고 근육도 잘 붙는 성향이세요. 그리고 제가 팔씨름을 했었어요. 그냥 재밌어서 했는데 대회도 몇 번 나갔어요. 이 얘기는 좀 창피하긴 한데, 고등학교 때 수능장 가서까지도 팔씨름을 했었거든요. 각 학교가 다 모여서 오니까 제일 센 사람들끼리 모이잖아요. 거기서도 제가 제일 셌거든요. 그래서 제가 엄청 거만해져서 ‘내가 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팔씨름 체육관을 찾아갔어요. 근데 거기서 한 판도 못 이겼어요. ㅎㅎ 그리고 예전에 더플라스틱 문래점에서 팔씨름 이벤트를 했던 거 알아요? 문래 근처에 있는 팔씨름 체육관이랑 협업해서 이벤트를 했었는데, 제가 예전에 그 체육관 사장님한테 배웠었어요. 그날 가서 사장님을 5년 만에 뵀어요. 물론 팔씨름 1등도 뽑았지만 팔씨름과 클라이밍을 알리자는 좋은 취지의 행사였죠.

전완에 달걀도 아닌 타조알이 들어 있는 듯하다.
혹시, 기억에 남는 등반이 있나요?

2019년도 선수권 볼더링 대회가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입상 경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제가 3T 4Z으로 2등을 했거든요. 그때는 개별종목 예선 성적으로 국가대표 자격을 줬었는데, 처음으로 볼더링 국가대표 자격을 딴 거죠. 근데 문제는 제가 입상한 줄도 모르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배고파서 치킨집으로 갔어요. 닭 다리를 뜯던 도중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형! 형 2등이래! 지금 어디야?”라고 동료 동생이 말하더라고요. 머리가 하얘졌어요. 결국 시상식에 늦어서 사진은 2등 자리가 공석으로 찍혔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사진: 천종원 선수의 어머니]
선수로서의 최종 목표가 있을까요?

국가대표 자격을 한 번 더 따는 거요. 사실 19년도에 월드컵 출전을 안 했어요. 어린 마음에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게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실력을 더 키워서 나가겠노라고 다짐했지만, 그 후에는 한 번도 못 따냈어요. 멍청했죠. 그래서 한 번 더 국가대표를 자격을 따내고 싶습니다. 추가로 체전에서 연맹 후원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ㅎㅎㅎ

[사진: 강호기]
앞으로 어떤 클라이머가 되고 싶나요?

장르를 불문하는 올라운드 클라이머가 되고 싶어요. 스포츠, 록, 아이스 등등….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다가 죽고 싶어요. 클라이밍 외에도 제 모토가 그래요. 10년 후에는 여행과 바위를 즐기는 꼰대 클라이머가 되어있을 것 같아요.

[사진: 손주현]
마지막으로 여찬 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뭔가요?

담배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근데 하고 싶어요.

협찬: 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
장소 지원: 더클라임 연남점
인터뷰 사진: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