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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머, 나가사코 메이

Wednesday, September 11, 2024

얼마 전 한국으로 온 일본 클라이머, 나가사코 메이(이하 메이). 필자와는 알고 지낸 지 수년째지만 매번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긴 시간 대화를 나눠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한창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뷰를 결심하게 됐다.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메이입니다. 클라이밍은 9, 10살 때 시작해서 20년 정도 됐어요.

클라이밍을 처음 하게 된 계기 같은 게 있나요?

제가 세 자매거든요. 언니랑 여동생 둘 다 밖에서 노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저는 반대로 밖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혼자 나무를 타곤 했어요. 아빠가 클라이밍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저한테 같이 해보자고 하셨어요. 근데 재밌어서 계속하게 됐죠.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게 신기합니다. 따로 한국어를 배웠나요?

친언니가 K-POP을 좋아했는데 옆에서 같이 듣다 보니까 가사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는 ‘처음 배우는 한국어’ 같은 책을 봤어요. 그리고 한국 예능 중에 자막 있는 거를 계속 보다 보니까 자연스레 늘었어요. 일본어랑 비슷한 점이 많아서, 일본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는 게 더 쉬운 것 같아요. 한자가 있으니까 단어 뜻도 쉽게 예측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지금 한국에 온 이유는 뭔가요?

그냥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 제가 캐나다에서도 오래 살았었는데, 혼자 친구가 많이 없는 데서 생활하는 게 조금 더 열심히 살게 되더라고요. 일본에는 가족도 있고 오래 만난 친구도 있고, 열심히 안 해도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 도움 없이 사는 게 저한테는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한 번 더 해보고 싶었고 만약에 또 하게 된다면 그게 한국이었으면 했었던 거죠.

한국에 와서 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코지블랙 친구들과 함께 루트 세팅을 하고 있어요. 세팅을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 일주일에 많으면 3일 정도로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코지블랙 친구들과 함께 멋진 대회를 만들고 있다. [사진: 이다선]
그럼, 세팅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있나요?

이자카야에서 알바하려고요! 제가 합정동(홍대 근처) 쪽에 살잖아요. 주변에 일식당이 진짜 많더라고요. 라멘집도 많고 이자카야도 많고요. 근데 제가 라멘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아서 얼마 전에 이자카야 면접을 봤는데 다음 주에 처음 출근해요. 한번 놀러 오세요ㅎㅎ. 원래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세팅 일이 아침이다 보니까 시간이 겹쳐서 안 되겠더라고요.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자연 등반도 하는 것 같은데 레드포인트가 어떻게 되나요?

최고 그레이드가 높지는 않아요. V9을 몇 개 했고, V10을 몇 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제대로 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제가 작년에 출근도 하고 세팅도 너무 많아서, 다른 지역으로 게스트 세팅하러 이동하는 날만 쉬는 날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바위를 위해서 트레이닝할 시간도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말했던 V10 중에 꼭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제 첫 V10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 있는데, 미즈가키에 있는 키리(霧 Kiri)요. 생긴 게 너무 멋있어요. 저는 난이도 상관없이 하는 거를 좋아해서 가이드북 같은 것도 안 가지고 다녀요. 정보 없이 모르는 상태로 하고 나서 나중에 확인해 보면 ‘난이도가 이거였는데 이렇게 어려웠다고?’ 이런 식으로 재미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근데 얼마 전에 혼자 갔었을 때 그 근처에서 만난 사람들이 ‘의도가 원래 이거였어요.’ 아니면은 ‘이게 이런 바위고 이름이 이거고 난이도가 이거에요.’라고 다 알려 주더라고요. 그게 좀 별로였어요.

한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도 마찬가지군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것 같아요.

미즈가키(Mizugaki), 일본
레드리버 고지(Red River Gorge), 미국
메이가 생각하는 제일 좋아하는 암벽화랑 이유는 뭔가요?

인스팅트 VSR이요. 볼륨만 밟는다고 생각했을 때는 벨로체도 좋은데 힐이랑 엣징이 조금 부족해요. 인스팅트 VS도 좋은데 뒤꿈치가 너무 높아서 아프더라고요. 라스포티바는 제 발에 안 맞아서 거의 안 신었고요. VSR이 나오기 전에는 하이앵글도 좋았어요. 스카르파가 저한테 제일 맞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선수 생활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12살 때였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정도 했죠. 같이 운동하던 언니의 아버지가 도쿄 청소년 대표를 관리하는 분이었는데, 그때 선수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어떻게 하다 보니 선수를 하게 됐어요. 사실 별로 안 하고 싶었는데 도쿄 대표 선수로 운동을 하면 암장 돈을 내준다고 해서 했어요ㅎㅎ. 리드 대회 때였는데, (매달려서 다음 홀드를 쳐다보며)‘아 저건 절대 못 잡겠는데’ 하는 홀드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어요.

노나카 미호(이하 미호) 선수와는 함께 선수 생활을 하며 친해졌던 건가요?

그때는 암장 자체가 많이 없었는데, 도쿄에 리드할 수 있는 체육관 같은데? 거기서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사실 첫 만남의 기억은 거의 없고 제가 캐나다에 가고 나서 조금 더 친해졌죠. 자주는 아니고 1년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까 그때마다 조금 더 깊은 대화를 하게 된 것 같아요. 미호는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기 쉽지 않은 감정들이나 고민 같은 것을 얘기하고, 저도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생기는 고민을 편하게 말할 수 있었어요.

캐나다는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갔던 건가요?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갔는데, 어학원을 다니다 보니까 한국인 친구나 일본인 친구밖에 못 만나서 ㅎㅎ. 그리고 해외 암장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일하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캐나다가 이민이 진짜 많아서 얼굴만 봐서는 캐나다 사람인지 모르겠는 거죠. 그래서 대부분 영어로 말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데도 알아듣는 척하고 계속 일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늘었어요. 세팅도 거기서 시작했어요. 제가 면접 때부터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마침 여자 세터 한 명이 그만둔다고 해서 할 수 있게 됐어요.

혹시 기억에 남는 등반이 있나요? 보통 제가 이 질문을 하는 거는 바위 등반 위주이긴 한데, 메이가 아까 말했던 리드 대회에 나가서 ‘저건 절대 못 잡겠다.’라고 생각했던 등반이 될 수도 있겠네요ㅎㅎ.

친언니가 도쿄에서 조금 멀리서 살고 있는데, 최근에 베이스캠프를 그만두고 거기 놀러 가서 언니 차를 빌려서 혼자 바위를 다닐 때예요.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바위를 갔었는데 혼자 하기에 조금 무서운 높이였죠. ‘마츠카제(松風/1급)’라고 V5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사실 1시간 만에 끝내고 맥주 사러 가야지 했는데 3시간이나 걸렸어요. 시즌도 아니었고 더운 시간에 하니까 위에 있는 크럭스 동작이 진짜 어려웠죠. 이러다 못하겠는데 했지만 해내서 조금 뿌듯했어요.
그거랑 미국 레드락을 갔을 때 바위가 이렇게 쪼개져 있는 플럼버스 크랙(Plumber’s Crack)이 기억에 남는데, 그게 완등하고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가야 했어요.

그거(플럼버스 크랙) 저도 해봤는데, 내려오는 길이 따로 있던데요?

저도 나중에 있다고 들었는데, 등반할 때는 저희가 아예 알아보지도 않고 갔다가 하게 된 거라서요.

거기 좁아서 패드도 못 까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다시 내려왔어요?

그러니까요. 근데 죽지도 않는다고 들었어요. 만약에 떨어져도 크게 다칠 수는 있는데 그냥 ‘죽지는 않겠지!’ 하고 내려갔던 것 같아요. 그게 제가 했던 바위 중에 제일 높았을 거예요.

참고로 플럼버스 크랙은 이렇게 생겼다.
메이는 앞으로 어떤 클라이머가 되고 싶나요?

세팅을 조금만 더 잘하고 싶긴 해요. 항상 일본에서 세팅하면서 듣는 말이 ‘운동을 조금 더 잘해야 돼’ 이런 말만 들어요. 평가를 받으면 세팅 능력이나 커뮤니케이션 그런 것들은 문제가 없는데, IFSC 같은 대회 세팅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운동을 더 잘해야겠다는 말을 일본에 있는 동안 계속 들었었어요. 자격증 딸 때도 그렇고, 자격증 따고 나서도 같이 일을 하고 나서 ‘피드백 주시겠어요?’ 하면은 거의 다 ‘딱히 없는데 운동 조금만 더 열심히 해’ 이런 식인 거죠.

그러면 그 사람들이 원하는 실력이 어느 정도예요?

재팬컵 예선 문제는 풀 수 있을 만큼이요. 여자 문제만큼은 부분으로라도 다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세팅 팀으로 들어갔을 때 도움이 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요.

세터로서 더 발전하고 싶은 거군요.

바위도 많이 하고 싶은데 아직은 세팅이 재밌으니까 더 집중하고 싶어요. 바위도 ‘이 루트 진짜 완등하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면은 할 텐데 아직 그런 바위를 못 만났어요. 보통 ‘아, 이거 언젠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정도였죠.

마지막으로 메이에게 클라이밍이란 뭔가요?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해주는 거요.
사실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몸무게가 많이 나가든, 키가 작든 크든, 유연하든 아니든 이런 거 상관없이 자기 스타일에 맞게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거라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세터로서 생각해 보면 사람이 만드는 거를 사람이 풀어야 하는 이런 스포츠가 또 없잖아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우는 점도 많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성장하고 있더라고요.

인터뷰 사진: 장효진
장소 지원: 서울볼더스 선유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