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REEL ROCK 18 상영회

Saturday, August 24, 2024

클라이밍을 시작한 후로 많은 등반 영상을 찾아봤다. 요즘은 고사양의 카메라도 많이 보급되면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많아진 덕분에 예전에 비해 질 좋은 등반 영상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내가 처음 클라이밍을 접했던 2007년쯤엔 유튜브도 활성화돼 있지도 않았고 등반 영상을 보려면 구글 검색으로 찾아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페이스북이나 비메오(Vimeo) 같은 플랫폼에서 주로 보곤 했다. 고화질의 볼만한 비디오가 많이 제작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나는 항상 등반 영상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다이 고야마다(Dai Koyamada)는 자신의 프로젝트 등반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비메오에서 판매하고 있었고, 미국의 등반 영상 제작사인 빅업 프로덕션(Big UP Productions)도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 중 King Lines라는 작품은 나에게 처음으로 씨코블락(Psicobloc, 딥워터 솔로잉)을 알려줬다. 크리스 샤마(Chris Sharma)가 폰타스(Es Pontàs)를 초등하는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 외에도 지미 웹(Jimmy Webb), 다니엘 우즈(Daniel Woods), 폴 로빈슨(Paul Robinson), 날레 후카타이발(Nalle Hukkataival) 등 엄청난 클라이머들도 모두 이때 알게 됐다. 그렇게 등반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나에게 등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됐다.

'Uncharted Lines' 2017년 작, 지금보다 앳된 모습의 폴 로빈슨과 지미 웹

릴락 역시 즐겨보던 작품 중 하나다. 아마 처음 봤던 건 릴락5(2009년 작)였을 거다. 릴락은 여전히 4편 정도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내 주 관심사는 스포츠 클라이밍과 볼더링이었기에 모든 에피소드가 흥미롭진 않았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면 미처 몰랐던 새로운 분야의 등반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방면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어떤 형태의 등반이든 대단하고 멋지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배웠다. 꾸준히 넘버링을 이어가고 있는 릴락은 매번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나를 흥분 시킨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글 자막의 부재이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저 유추하고 그들의 표정에서 감정을 느끼며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다.

'REEL ROCK 5' 2009년 작, 지금은 볼 수 없는 스위스 알피니스트 율리 스텍(Ueli Steck).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는 몇 년 전부터 릴락의 자막을 번역해서 상영회를 진행하는데 정말 고마울 수가 없다. 사무실이 위치한 일산 쪽으로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당연하게도 이번 릴락18 상영회도 참여하게 됐고, 개인적으로는 클라이밍 짐에서 보는 것보다는 편한 의자에서 시청하고 싶어서 롯데시네마 상영회를 선택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상영관인 1관 앞에서 줄을 서 차례대로 티켓과 소소한 사은품을 받고 입장했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라 비교적 일찍 도착한 나는 마음에 드는 자리를 선점하는데 한결 수월했다. 시작 전에 블랙다이아몬드 마케팅팀 이경빈 책임님이 앞에 나와 안내 말씀과 릴락18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석 달 동안의 노력을 했다고 전해주셨다. 특히 심의 절차를 밟는 것이 어려웠다고… 이윽고 기다리던 상영회가 시작됐다. 이번 릴락18은 상영 시간이 총 120분이며, 크게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그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용은 블랙다이아몬드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참고했다.

Yeah Buddy (Angie Scarth-johnson & Hazel Findlay)

어린 나이에 기록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낸 호주 클라이머인 앤지와 베테랑 클라이머인 헤이즐이 팀을 이루어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최고의 딥워터 솔로잉에 도전합니다.

Jirishanca (Josh Wharton & Vince Anderson)

저명한 알피니스트인 조쉬와 빈스가 페루 안데스산맥의 장대한 6,094m 높이의 히리샹카에서 자유 등반을 시도합니다. 5.13 난이도의 페이스 등반, 얼음으로 형성된 오버행과 테크니컬한 믹스 등반 구간 등, 큰 위험이 내재된 등반을 극복하면서 알파인 등반에 대한 애정을 조화롭게 풀어내는 여정을 만나보세요.

With My Heart (Sachi Amma)

일본의 경이로운 클라이머 사치의 철학적 여정을 따라가 보세요. 3회 세계 챔피언에서 트래드 클라이머로 진화한 그는, 일본의 신화적인 미즈가키산의 암벽을 훼손하지 않고 최초 등반을 시도합니다.

Climbing Never Die (Matt Groom & Danyil Boldyrev)

등반 기자 매트는 전쟁으로 황폐해된 우크라이나에서 클라이밍과 애국심으로 뭉쳐 있는 공동체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전쟁에 의한 상처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본편인 네 개의 에피소드 말고도 보너스 에피소드가 세 개 더 있지만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만 시청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너스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해 보여 이것 때문에라도 개인적으로 릴락18을 구매할 예정이다. 그래도 본편을 한글 자막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앞으로도 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에서 꾸준히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상영회를 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진: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