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Red Rock Bouldering #3

Saturday, December 24, 2022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

이현동

이현동

클라이밍 10년 차

나이: 32
레드락 한 번 가본 적 있음
삼성맨
행동 대장

조선교

조선교

클라이밍 9년 차

나이: 32
호주 유학파
핸드워크 스태프
응원 단장

이정록

이정록

클라이밍 10년 차

나이: 29
캐나다 유학파
COZYBLACK

김형준

김형준

클라이밍 7년 차

나이: 23
LA 거주 중
여행 중간에 잠시 합류
ZIPU RAWKEY

등반 일지 - 17일 목요일

새로 합류한 형준 군의 힘과 스킨이 있을 때 가장 어려운 루트를 하자는 의견의 만장일치로 이전에 갔던 블랙 벨벳(Black Velvet Canyon)으로 향했다. 다시 온 오프로드는 역시 두려웠고 차가 다 부서져 가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두 번째라고 조금은 안전하게 진입했다. 주차장에 거의 도착해 갈 때쯤 뒤에서 스바루(Subaru) 한 대가 빠르게 접근했다. 차체도 높고 바퀴도 커서 오프로드를 잘 달릴 수 있게 개조한 듯했다. 이내 우리를 추월하고 앞에서 드리프트 같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쉬운 문제를 캠퍼싱으로 등반하고 슥 가버리는 고인물을 보는 초보자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때 스바루에게 당한 능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앞으로 10시간 정도 속세와 단절될 예정에 마지막 소식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하고 주차장을 나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이날의 첫 번째 목표는 지난 토요일에 우리를 굴복 시킨 The Fountainhead(V9)였다. 하지만 그전에 워밍업을 하지 않으면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될 것 같아 먼저 쉬운 루트를 몇 개 해보기 위해 가이드북을 펼쳤다.

어프로치 중간에 The Nape라는 적당한 볼더가 있어 그쪽으로 향했다. 그레이드는 V6로 몸풀기에 적당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시작 부분의 홀드가 엄청 잡기 힘든 슬로퍼였다. 다음 홀드는 멀지만 좋았는데 그 이후는 아주 쉬워 보였다. 가이드북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추운 날씨가 도움을 줄 것이라 쓰여 있었고, 좋은 홀드부터는 스탠드 버전으로 V2밖에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동작을 시도해 봤지만 햇빛을 받고 있는 슬로퍼 홀드는 우리를 밀어내기만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V2만 해보고 The Fountainhead로 이동했다.

The Nape(V6), 클라이머 이현동

두 번째 세션이라 그런지 조금 긴장됐지만 이때를 기다리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머릿속으로 첫 번째 세션 때 찾아놓은 베타를 다시 한번 시뮬레이션 했다. 저번과 다르게 날도 밝아 맨틀링 전까지만 가면 완등할 거라고 확신했다. 몸이 덜 풀렸는지 맨틀링까지 진입하지 못하다가, 5~6번째 즈음 기회가 왔지만 확신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어려웠다. 유연하지 못한 탓에 오른손 푸시로 오른발까지 올리는 것은 무리였고 최대한 왼 다리에 체중을 실어 앉을 수 있게 만든 뒤,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다음 홀드를 잡고 나서야 오른발을 올릴 수 있었다. 클라이밍 인생 역대급으로 짜릿한 맨틀링이었다. 아래 동작을 찾지 못한 정록 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수에 성공했고 서둘러 마지막 목적지인 Wet Dream 볼더로 출발했다.

도착한 곳에는 이미 누군가 Wet Dream을 등반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특히 팔이 굉장히 두꺼운 친구였다. 등반하는 것을 보니 역시 힘이 엄청났다. 하지만 Wet Dream은 디테일한 테크닉이 많아서 파워로만 등반해서는 안 된다. 시작부터 크럭스인 두 손가락 재밍까지는 파워 동작 위주지만 그 후부터는 슬로퍼 컨트롤과 토훅 등에 기반해 섬세한 테크닉이 좋아야지만 발이 터지지 않고 진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센 각도에서 안 좋은 홀드를 잡고도 과감하게 동작을 이어갈 수 있는 대담함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상당한 파워가 필요한 Wet Dream

오버행의 파워 동작에 취약한 나는 Wet Dream보다는 조금 옆으로 돌아가는 Wet Dream Right(V11)로 노선을 변경했다. 시작 홀드는 똑같지만 오른쪽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다르고 상단의 두 손가락 재밍 부분부터는 Wet Dream과 동일하다. 진정한 재미는 두 손가락 재밍부터라고 생각했기에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V11답게 Right 또한 디테일이 상당했다. 결코 짧지 않은 라인 안에 여러 가지 그립과 동작이 들어있는 것이 괜히 One of the best boulder in U.S.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었다.

두 손가락을 재밍 하는 중이다. 클라이머 조선교.

우리는 시간 흐르는 것을 잊고 Wet Dream을 오르며, 추우면 커피를 내려 마시고, 내일은 어디를 갈지 이야기하며 온전하게 이곳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두워진 후 나는 완등은 제쳐두고 루트의 꽃인 상단부분을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생각이었으나 다른 친구들은 완등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도전했다. 부분으로 두 손가락 재밍 후 스윙을 버티는 동작을 시도했다. 왼손은 슬로퍼이고 높이 또한 결코 낮지 않기에, 거의 오른손 재밍으로만 버티는 동작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떨어지면 손가락 두 개가 없을 거라는 각오를 하고 발을 떼었는데 버텨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그 후 마지막 크럭스에서 떨어졌지만 더 이상 여한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크럭스가 너무 까다로워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전 동작들도 충분히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Wet Dream Right, 클라이머 이현동

나는 등반을 마무리한 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손이 언 친구를 위해 돌을 구워 초크백에 넣어 주기도 했다. 등반 도중 추워져 손에 감각이 없을 때 초크를 묻히면서 돌을 만지면 많은 도움이 된다. 전에 스포츠 루트를 할 때 사용하던 방법이다. 아쉽게도 완등자는 없었지만 모두들 Wet Dream을 등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리라. 현동 군은 태어나서 해본 것 중에 최고 재미있는 볼더라고 말할 정도였다. 우리는 볼더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고 하산했다.

등반 일지 - 18일 금요일

산 골짜기라 바람도 많이 불고 해도 잘 안 드는 블랙 벨벳(Black Velvet Canyon)에서 오래 있었던 탓일까? 감기에 걸린 것 같아 형준 군이 준 감기약을 먹고 잤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가까운 크래프트(Kraft Boulders)로 갔다. 아침부터 크래프트에서 등반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가까운 볼더부터 해보기로 했다. 여행 막바지인데 이제야 크래프트를 제대로 등반하다니 뭔가 순서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간 곳은 The Cube라는 볼더인데 상당히 높고 크다. 어두울 때 본 것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몸을 풀기 위해 도착했는데 때마침 형준 군의 미국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게 됐고, 이곳 크래프트가 유명한 등반지라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Perfect Poser, 클라이머 한태훈

Perfect Poser(V1)라는 루트의 그레이드에는 높이에서 오는 두려움은 전혀 반영이 되어 있지 않았다. 실제로 등반해 보니 아주 정직하게 홀드와 동작만으로 그레이드가 정해진 듯했다. 탑 아웃을 하면 바로 앞에 볼트가 설치되어 있는 걸로 봐서 전에는 로프를 걸고 했었던 것 같다.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지만 내려가는 것이 문제였다. 옆의 V0 루트를 다운 클라이밍 하거나 다시 Perfect Poser로 내려가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맨 위에서 등을 돌려 발을 딛는 순간부터 식은땀이 난다. 정말 등반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려운 루트였다.

그 후 우리는 형준 군의 친구들과 함께 Fear of a Black Hat(V9)으로 패드를 옮겼다. 하이볼인데다 크럭스도 상단에 있어서 꽤나 까다로운 루트이다. 스타트 동작은 조금 멀지만 홀드가 좋아서 과감하게 뻗어 잡는다. 중간에 있는 가로로 긴 레일 슬로퍼에서 오른손이 나가는 것이 조금 불편한데, 오른손 홀드가 약간 큰 달걀을 쥐는 듯한 특이한 그립이며 손가락이 들어가는 자리가 있어서 정확하게 잡아야 그다음 동작들을 하기에 좋다. 다음 왼손 홀드가 루트에서 가장 안 좋은 사이드 크림프인데 반의반 마디 정도에 살짝 흐르기까지 한다. 나는 왼손의 그립에서 믿음이 생기지 않아 오른손을 제대로 쳐보지 못했다. 분명 오른손 홀드는 좋은 핀치라는 것을 알지만 왼발은 힐이 걸려있고 오른발을 면에 데고만 있다 보니 자신감이 부족했다. 게다가 왼쪽에 큰 바위가 있는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좋지 않은 컨디션에 무리한 동작을 했다가 괜히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정록 군이 크럭스를 돌파해 상단에 진입했다가 힘이 빠져 내려오게 됐는데 패드로 착지했는데도 워낙 높아서 뒤꿈치를 다치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나니 이 루트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 버렸다. 

Fear of a Black Hat, 클라이머 한태훈

조금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자 쉬운 루트를 찾다가 이곳에 오면 꼭 해봐야 한다는 Plumber’s Crack(5.9)을 찾아갔다. 일단 그레이드부터 5.9로 표기부터 주변 볼더링과 다르게 스포츠 루트의 형태였다.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생긴 틈새를 올라야 하는데 처음은 몸을 겨우 넣을 정도이지만 끝으로 갈수록 점점 간격이 넓어지면서 살짝 무서워진다. 패드를 넣을 수도 없고 스팟도 볼 수 없어 프리 솔로를 하는 기분이다. 추락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 이상은 생각하기 싫었다. 조심스럽게 등반하다 보니, 탑 아웃을 할 때쯤 정록 군이 “형 영상 녹화 시간이 4분이 넘었어”라며 핀잔을 줬다. 하지만 그다음 차례였던 정록 군은 5분을 넘게 등반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완등 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이곳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 황홀한 한편, 다음 날 마지막 등반만을 남겨 놓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이 들었다.

Plumber’s Crack을 등반 중인 형준 군

금요일이라 그런지 오후가 되니 꽤 붐볐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보일 정도로 클라이머들이 많은 이유는 이곳의 탁 트인 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첫날 야볼로 했던 500$ 볼더에서 각자 하고 싶은 루트를 하고 나는 잠시 누워 자다가 일어났는데, 상태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아 먼저 차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나머지 친구들은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세게 불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예상보다 일찍 마치고 돌아왔다.

Woods Problem을 등반 중인 친구. 프랑스에서 왔다고 했다.

등반 일지 - 19일 토요일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등반 날이 왔다. 이틀을 열심히 달린 형준 군은 오후에 다시 LA로 돌아가기 위해 혼자 숙소에 남게 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비숍(Bishop)에서 만나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이곳에 도착한 날부터 매일을 등반한 탓에 다들 너무 지쳐있어서 크래프트(Kraft Boulders)에서 아직 안 가본 아래 섹터의 쉬운 루트들을 하기로 했다. 차로 가는 길 중간에는 레드락의 시작을 알리는 바위로 된 마커가 있는데, 여행 내내 지나갈 때마다 사람 없을 때 기념사진을 찍자고 미뤘던 것이 결국 마지막 날까지 오게 됐다.

주말의 크래프트는 정말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이동하는 모든 볼더마다 등반 중인 클라이머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열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멈춰 등반하는 것을 지켜보니 몸풀기에 적당해 보여 자연스럽게 패드를 깔았다. Jones’n(V5)과 Dusty Coffee(V5)로 몸은 풀었지만 손가락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특히 Dusty Coffee는 한 동작이지만 런지라 몸을 던지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다.

다시 트레일을 따라 이동하다가 현동 군이 예전에 왔을 때 했던 The Pearl(V5)이라는 루트를 추천했다. 스킨이 아픈 상태에서의 페이스 등반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V5이지만 길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손을 많이 타서 반질반질한 게 미끄러웠다. 예상보다 많은 시도 끝에 겨우 끝낼 수 있었는데, 크럭스 이후 홀드들은 프릭션이 좋은 걸로 봐서는 초보자들이 오고 가며 많이 해본 것 같다.

The Pearl, 클라이머 조선교

이번에도 현동 군의 추천으로 My Tan(V7)이라는 루트를 하게 됐다. 라인의 길이는 짧은데 초반 몇 개의 홀드가 안 좋아서 이날 상태로는 버틸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았는지 계속 치는 동작만 했는데 발을 잘 써서 정적으로 가는 동작도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교 군만 완등했다.

My Tan, 클라이머 이정록

첫날 야볼을 하러 왔을 때 저 멀리 다른 무리가 등반을 하던 것이 떠올라 그곳으로 향했다. Bubble Butt(V7)과 Scare Tactics(V9+)가 메인 루트인데, 먼저 Bubble Butt을 시도했다. 스타트 홀드가 엄청 반질한 슬로퍼라서 컨트롤하기 힘들었는지 대부분의 친구들은 칸테에 토훅을 거는 베타를 시도하고 있었다. 발을 뻗어보니 닿지 않아 바로 다른 베타를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딱 봐도 슬로퍼를 컨트롤해서 런지를 하는 방법뿐이라 컨트롤을 위해 나에게 맞는 그립을 찾는 게 다였다. 여러 방법으로 잡아보고 던지니 대충 감이 왔다. 솔직히 런지를 성공한 후는 페이스 쪽으로 넘어가서 올라가면 끝이라 초반 동작만 집중했는데, 사실 페이스로 넘어가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홀드는 좋았지만 너무 아팠고 생각보다 멀어서 과감하게 던져야 했기에 몇 번 망설였기 때문이다.

정록 군은 전날 뒤꿈치를 다쳤고 현동 군의 손은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날은 나와 선교 군만 등반을 했다. 그래도 Scare Tactics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루트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는지, 결국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네 명 모두 등반을 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컷 홀드로 구성되어 있고 벽 각도가 조금 있는데 뒤에 다른 바위들이 있어 댑을 피하는 것도 신경 쓰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힘을 써야 했다. 몇 번 해보니 지금 상태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접고 대신 스토브를 펼쳤다. 마지막으로 이소 가스를 소비할 겸 커피도 내리고 컵라면에 물도 부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 와서 스토브를 여간 잘 쓴 게 아니다. 여행 출발 전 스토브를 챙길까 말까 고민할 때에 모두가 빼고 짐을 줄이라고 했지만 가져오기 참 잘 한 것 같다. 다음 여행 때도 이곳 레드락처럼 스토브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꼭 챙기리라.

Scare Tactics, 클라이머 이정록

미국 - 20일 일요일, 한국 - 22일 화요일

이제 미국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됐다. 미국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곳 라스베이거스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인천 공항으로 가는 일정인데, 환승 여유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아 아쉬울 새도 없이 긴장한 채로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야 하는 비행기가 딜레이 되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환승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자 항공사는 우리에게 다음 날 비행기를 타야 할 거라며 하루 묵을 호텔을 제공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우리는 귀국 후 각자의 일정이 있기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고, 현동 군과 정록 군이 열심히 항공사 고객 센터로 문의한 결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날 오후 11시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원래라면 월요일 오후 4시였던 귀국 시간은 화요일 새벽 5시가 됐다. 도착 후 캐리어를 끌고 바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두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반나절 동안 잠을 자며 마음껏 휴식했고, 나에게 있어 인생에서 최장 시간 공항에 머문 기억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참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에필로그

여행 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아직도 그에 대해 사소한 팁이나 노하우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그 연장선에 있는 등반 스케줄 또한 어떻게 계획하고 조절해야 하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매일 등반해도 모자랄 만큼 많은 볼더들이 있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또 우리의 체력은 한계가 있다. 이 요소들을 적절히 버무리면 되지만 사실 등반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하는 동료들과 끝없이 논의하고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난도 루트 위주로 등반할 것인지 아니면 그레이드와 상관없이 최대한 많은 루트를 경험해 보는 것이 우선인지 등 여행의 목적부터 하나씩 정해보면 되지 않을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암(SandStone)을 처음 접해봤다. 손이 아픈 건 마찬가지지만 그 정도가 한국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화강암에 비해 덜 해서 그런지 등반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프릭션의 느낌도 평소 잡던 화강암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석회암을 잡아야 했던 크라비(Krabi)보다 적응하는 시간도 적게 들었다. 함께 등반했던 미국 친구의 말로는 레드락(Red Rock)보다 비숍(Bishop)이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했는데, 비숍을 가본 현동 군과 선교 군의 의견은 그 반대였다. 아마 화강암을 주로 잡으며 등반했던 우리가 비숍의 화강암에 더 익숙해서 이지 않을까? 아니면 그 친구가 레드락보다 높은 비숍 볼더와 맞지 않거나 서로 다른 그립 스타일에 따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듯, 가지각색의 환경에서 얻는 등반 경험은 클라이머를 한 층 성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더 격렬히 많은 곳을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아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