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Red Rock Bouldering #2

Friday, December 16, 2022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

이현동

이현동

클라이밍 10년 차

나이: 32
레드락 한 번 가본 적 있음
삼성맨
행동 대장

조선교

조선교

클라이밍 9년 차

나이: 32
호주 유학파
핸드워크 스태프
응원 단장

이정록

이정록

클라이밍 10년 차

나이: 29
캐나다 유학파
COZYBLACK

김형준

김형준

클라이밍 7년 차

나이: 23
LA 거주 중
여행 중간에 잠시 합류
ZIPU RAWKEY

등반 일지 - 14일 월요일

미국에 도착한 날 야볼부터 내리 사흘을 달린 우리의 손은 엉망인 상태였기에 이날은 오후까지만 등반하기로 했다. 접근성이 좋고 전반적으로 그레이드가 낮은 루트들이 많은 에어리어를 찾던 중, 전날 갔던 레드 스프링(Red Springs)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레드 웨이브만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에어리어의 북쪽만 갔다면 이날은 반대로 남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보드 워크가 아닌 트레일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볼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약속한 듯이 터틀 쉘(Turtle Shell) 볼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짐을 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제일 눈에 띄는 볼더인 데다 이미 여러 클라이머들이 등반 중이었기 때문이다. 볼더를 한 바퀴 돌면서 워밍업을 할 루트를 물색했다. 나는 등반지에 도착해서 그날의 첫 등반을 할 때는 이미 누군가 시도하고 있는 루트보다는 비어있는 루트를 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한 편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시작하기에 앞서 테이핑을 하는 등 준비 시간이 필요한 이유에서다. 사실 이날은 다들 손 상태가 온전하지 못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에 시간 할애를 많이 했다. Cherry Garcia는 V3 지만 플래시 하지 못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난리를 피우며 등반한 까닭에 주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Cherry Garcia 완등 후 경치를 구경하는 선교 군

우리는 ‘쉬운 것이든 어려운 것이든 어차피 아픈 건 마찬가지’라 생각해서 곧장 이 볼더의 메인 루트인 Monkey Wrench(V7)를 하기로 했다. 루트의 크럭스인 중간 부분을 해결하는 베타는 크게 두 가지인듯했다. 첫 번째는 왼쪽의 흐르는 두 손가락 포켓을 잡고 다음 저그 홀드를 잡는 방법인데, 포켓 전 오른손이 안 좋아서 왼손을 정확하게 꽂는 것이 어렵다. 두 번째 방법은 오른쪽에 있는 두 손가락 포켓 홀드를 사용하는 것인데, 포켓 자체는 매우 좋지만 사이드 언더 방향이라 오른 무릎을 완전히 넘겨 몸을 잠가야 다음 홀드를 잡을 수 있다. 많은 영상을 참고한 결과, 전자가 오리지널 베타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햇빛이 다이렉트로 쬐는 덕에 흐르는 홀드를 컨트롤하기 힘들어 두 번째 방법으로 바꿔보았다. 오른손으로 사이드 언더 포켓을 잡고 무릎을 넘기는 도중 무릎은 ‘두둑’ 소리를 내었다. 무리해서 그다음 동작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와 앉았다 섰다도 해보고 무릎을 만져봤지만 큰 고통은 없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힘이 잘 안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후 다시 첫 번째 베타로 돌아왔지만 완등은 쉽지 않았다.

이 동작에서 무릎에서 소리가 났다

Monkey Wrench를 완등한 나머지 친구들은 더 아래에서 시작하는 Monkey Trench(V10)를 시도했다. 말이 더 아래이지 완전 볼더 아래 구석에서부터 기어 나오는 루트였다. 키가 크든 작든 항상 댑을 신경 써서 볼더에 착 붙어 있어야 한다. 덕분에 사진을 찍는 사람도 거의 누워서 촬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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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중간에 여러 클라이머들이 왔다 갔는데,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부터 서울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람, 캐나다 시골에서 온 친구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솔직히 무릎을 다친 후부터 그날 등반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후쯤 해가 넘어가서 프릭션이 좋아진 틈을 타 얼마 시도하지 않아 Monkey Wrench를 완등했다.

반려견과 함께 등반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서둘러 마지막으로 생각해뒀던 볼더로 이동했다. 오기 전 찾아본 영상에서 배경이 너무 예뻤던 Ultra Violet(V8/9)은 조금 어려워 보였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볼더가 거의 산꼭대기에 있어서 네 발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힘들게 올라갔지만 우리 중 아무도 완등하지 못했다. 중간에 날카롭지만 좋은 홀드로 던지는 동작이 정말 어려웠다. 각도가 엄청 센 것은 아니지만 잡고 있는 홀드와 발 홀드의 방향이 안 좋았는데, 평소에 문보드를 많이 하던 사람이면 잘 할 것 같은 동작이라 생각했다. 그다음 홀드들은 좋으나 과감한 범프 동작이 크럭스인데, 그 동작 후 다음 홀드를 잡지 못하면 반대로 날아가면서 거기에 있는 바위에 부딪힐 것 같아 무서웠다. 체력과 의지가 부족했던 나는 일찍 포기하고 열심히 스팟을 보면서 경치 구경을 하다 내려왔다.

Ultra Violet 볼더에서 바라본 풍경. 꽤나 높이 올라왔다.

등반 일지 - 15일 화요일

전날 휴식 등반을 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날 게이트웨이(Gateway Canyon) 에어리어를 가기 위함이었으리라. 이곳은 크래프트(Kraft Boulders)와 이어져 있는데, 더 깊은 에어리어이며 보다 어려운 루트들이 많다. 대중적이기보다는 며칠 전에 갔던 블랙 벨벳(Black Velvet Canyon) 같은 마이너 한 곳이다. 어프로치 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V10 이상의 루트들을 하러 간다는 마음에 힘든 것도 잊었다.

The Pork Chop(V4)은 에어리어 초입에 있는 유명한 루트다. 누가 이 아름다운 볼더를 지나쳐 갈 수 있을까? 우리는 먼저 등반을 하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몸을 풀었다. 발 홀드가 생각보다 안 좋았고 왼손으로 잡을 홀드가 없어 균형을 잡는데 애를 먹었다.

등반 후 다음 볼더로 이동하려 하는데, 개와 함께 왔던 친구가 따라와서는 현동 군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었다. 개와 같이 찍은 사진을 받고 싶다고 해서 흔쾌히 준다고 했지만 현동 군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했다. 나중에 보니 너무 어둡게 나와서 아쉬웠지만 아주 멋진 검둥이라는 것은 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계획상 다음 목적지는 Innocent Exile(V10)이라는 루트가 있는 곳이었는데, 대략 눈으로 보니 볼더가 너무 산 위에 있는 데다 그다음 목적지와도 반대 방향이라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그럴수록 주변 바위의 크기도 더 거대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찾던 볼더에 도착했다. 이곳은 V9 이상의 루트들이 여럿 모여있는 천국 같은 장소였다. Abstraction(V9), Stake Your Claim(V10), Americana Exotica(V10), Ackrite(V11), Book Of Nightmares(V11), Lethal Design(V12) 등이 있으며 우리는 이 중에 어떤 것을 할지 고민했다. 먼저 Abstraction을 해보고 이곳의 V9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보기로 했다. 

Abstraction, V9

Abstraction은 가이드북에서 본 것처럼 너무 아름다운 볼더였다. 하지만 홀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는데 특히 발 홀드가 극악이었다. 가로로 수평해서 방향이 좋은 것은 신용카드 두 장 두께로 정말 미세했고 그게 아닌 다른 것들은 사이드 방향이라 신중하게 딛고 밀어야 했다. 다행히 랜딩이 엄청 나쁜 편이 아니었고 함께 등반하는 미국 친구들도 있어서 패드도 넉넉했기에 완등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곳이 나름 고지대라서 그런지 상단에서 과호흡을 한 탓에 완등한 후 폐가 시릴 정도였다.

완등 후 내려와 폐가 시리다는 선교 군

완등 후 생각해 보니 이곳의 난이도 기준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이날 여러 개의 V10은 힘들겠지만 끈기를 갖고 도전한다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 루트가 그 날 완등할 수 있는 마지막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어떤 것을 할지 신중하게 정해야 했다. 솔직히 나는 각도가 약하고 라인의 길지 않은 Stake Your Claim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으나 나머지 친구들은 그것보다는 더 멋있고 재밌어 보이는 Americana Exotica를 선택했다.

주로 언더 클링이 많은 루트라 코어에 힘을 잔뜩 줘야 해서 나의 안티 스타일이었다. 시작 부분에는 크게 두 가지 베타가 있는데, 오른손 뚱뚱한 핀치 홀드를 사용하는 방법과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언더 클링 홀드만 잡고 진행하는 방법이다. 손이 작은 나는 뚱뚱한 핀치 홀드는 생각하지도 않고 죽어라 언더 클링만 잡고 시도했지만 결국 발을 높인 후 일어서는 것에 실패했다. 일어서면 끝날 것 같았지만 나중에 정록 군이 일어섰음에도 그다음 저그 홀드 잡는 동작을 세 번이나 실패하는 것을 보니 ‘일어서봤자 나도 똑같이 못했겠구나’ 싶었다.

언더 홀드를 잡고 일어섰으나 그다음 저그를 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지만 될 것 같지 않아 반포기 상태였다. 가까스로 선교 군과 현동 군이 완등을 했고 정록 군은 신에게 버림받았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너무 어둡고 추운 탓에 다른 루트를 더 하기는커녕 하산하는 것이 걱정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너무 굶주린 상태라 신속하게 정리하고 내려갔다.

등반 일지 - 16일 수요일

저녁에 LA에서 오는 형준 군이 합류 예정이라 휴식 등반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윌로우 스프링(Willow Springs) 에어리어였는데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가는 경로가 두 개였다. 하나는 토요일에 갔던 Red Rock Canyon Fee Station에서 통행료를 내고 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통행료를 내지 않지만 멀리 돌아가는 방법이다. 일단 후자를 선택한 우리는 1시간 정도를 달려 어느 한적한 도로를 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30분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길이 사라졌다. 지도를 보고 되돌아가보니 말도 안 되는 오프로드 언덕을 오르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도저히 더 앞으로 갈 수 없어 우리는 다시 Red Rock Canyon Fee Station으로 돌아왔고, 다행히 평일이라 그런지 예약 없이 17불(15불 + 미 예약 추가금 2불)을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서둘러 등반을 시작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V3 루트로 워밍업을 하고 미리 공부해 온 Getaway(V7)와 Fluffy Logic(V9/10)이 있는 볼더로 향했다. Getaway는 스타트 후 왼손 한번 나가는 동작을 제외하면 어렵지 않았다. 그 후 토훅으로 스윙이 나지 않게 멈춰놓고 손 정리를 한 뒤 토훅을 풀면서 왼손으로 좋은 홀드를 잡으면 끝난다. 스윙을 버틸 때, 뒤에 있는 바위 혹은 스팟터들의 손에 의한 댑에 주의하자.

그다음 Fluffy Logic은 두 손가락 포켓을 잡고 뛰어 Getaway에서 사용했던 좋은 홀드를 잡는 것이 크럭스인데, 포켓 홀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포켓 홀드를 잡으러 가는 동작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지만 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정록 군만 쉽게 해내면서 재등까지 해 보이는 기염을 토했다. 전날 Americana Exotica에서의 한을 조금이나마 푼 것 같아 보였다.

신은 날 버리지 않았어!
힐 베타를 시도하는 모습

다음에는 좀 더 볼더가 많은 길 반대편 섹터로 이동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나무도 많았고 바위도 붉은색보다는 회색인 부분이 많았다. 다른 계절에는 물이 흐르는 듯했다. 시선을 높여 위쪽에 있는 바위들을 보니 신기하게도 붉은색이었다. 나무가 울창해 볼더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조로 나눠 돌아다니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Sad Robot(V9)은 아주 짧은 루트인데 역방향의 오른손 홀드를 잡고 왼손을 뻗었을 때, 발이 터지면서 옆에 있는 바위에 부딪히지 않는 것이 포인트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왼손 홀드가 좋아 왼손이 나가는 대신에 오른손을 한 번 더 범프 해서 크럭스를 해결했다. 우리 모두 솔직하게 V6 정도로 느껴졌다. ‘이 섹터가 개척된 지 오래돼서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Sad Robot을 너무 금방 끝내서 바로 옆에 있는 V5를 시도했다. Turd In The Reflecting Pool은 반질반질한 슬로퍼 홀드를 잡고 맨틀링하는 것이 매력적인 루트로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었다.

윌로우 스프링 에어리어가 있는 이 일대는 오후 5시인가 6시에 출입구를 닫기 때문에 서둘러 차로 돌아갔다. 스케닉 루프 드라이브라고 차로 이곳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그때의 노을이 지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연의 색을 카메라에 담기는 어려웠다

일찍 마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REI를 가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볼거리가 많았다. 등반에 필요한 장비도 구할 수 있으니 무언가 빠트리고 왔다면 이곳에서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것저것 구매한 뒤 LA에서 버스를 타고 온 형준 군을 만났다. 한국에서 보고 못 봐서 오랜만에 만난 거지만 그 시간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대로인 모습에 반가웠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