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BREAK

외계 언어 같은 대회 성적표

Saturday, July 2, 2022

IFSC 볼더 월드컵

Image by IFSC

최근 6월 22일, 2022년 마지막 IFSC 볼더 월드컵이 인스브루크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최초로 한국 선수 천종원, 이도현 두 명이 동시에 결승 무대에 오르는 경사가 있었죠. 저는 해당 대회 준결승이 진행되던 시간 비블럭 클라이밍 짐에서 운동 중이었는데요. 당시 그곳에서 운동하던 대부분의 회원분들이 유튜브로 라이브 중계를 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참 생소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IFSC 월드컵을 본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볼더링은 선수가 한 문제 한 문제 진행하며 존 홀드나 탑 홀드를 최초로 확보(secure) 할 때마다 점수가 갱신되며 그에 따른 순위 변동이 있습니다. 평소 대회를 직접 출전하는 선수나, 저처럼 관심이 많아 대회 관전을 많이 한 사람들은 이 점수 시스템이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선수 이름 옆에 쓰여있는 점수가 마치 외계 언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볼더 월드컵에서 사용되고 있는 Tops-Zones-Attempts 방식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Tops-Zones-Attempts

Screenshot from IFSC Youtube Channel

Tops는 완등(탑 홀드), Zones는 존 홀드, Attempts는 시도 횟수를 뜻합니다. 완등을 하면 Top의 숫자가 증가하며, 중간에 Zone이라고 지정되어 있는 존 홀드를 확보할 경우 Zone의 숫자가 증가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존 홀드를 사용하지 않고 완등을 한 경우 해당 시도에 존을 확보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Attempts는 완등과 존 홀드 확보에 소요된 시도 횟수로 각각 따로 기록됩니다.
해당 항목에는 아래와 같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1. Tops의 개수 (많을수록)
2. Zones의 개수 (많을수록)
3. Top 시도 횟수 (적을수록)
4. Zone 시도 횟수 (적을수록)

다음은 준결승 라운드에서 네 명의 선수 성적에 따른 순위입니다.
Rank 1: 3T4z 6 4 (탑 3개, 존 4개, 탑 시도 횟수 6, 존 시도 횟수 4)
Rank 2: 3T3z 5 4
Rank 3: 3T3z 6 4
Rank 4: 2T4z 3 4
4위 선수는 혼자 탑 개수가 적기 때문에 꼴등이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3탑을 했지만 1위 선수의 존 개수가 제일 많으므로 1위입니다. 나머지 두 명은 탑과 존의 개수가 같으니 탑 시도 횟수를 비교해 더 적은 선수가 2위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성적이 결정되는 과정의 예시를 보겠습니다. A 선수가 1번 문제를 등반하는데, 두 번째 시도에 최초로 존 홀드를 확보한 후 추락했다고 하면 이 선수의 해당 문제 성적은 1z2가 됩니다. 1개의 존을 2번의 시도에 얻었다는 뜻입니다. 자, 이 선수가 계속해서 등반을 합니다. 드디어 4번째 시도만에 완등을 했습니다. 그러면 1T4가 더해집니다. 그래서 A 선수의 1번 문제 종료 후 성적은 1T1z 4 2(완등 1개, 존 1개, 완등 시도 횟수 4, 존 시도 횟수 2)가 됩니다.
보통 존 시도 횟수는 생략되고 1T1z 4로 표기될 것입니다. 변별력이 있는 루트 세팅에서는 존 시도 횟수까지 따지지 않아도 최종 순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앞의 세 항목이 동일하면 존 시도 횟수를 비교해 순위를 결정하죠. 그것마저 같으면 전 라운드 성적이 좋은 선수가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준결승 최종 결과

위 이미지는 IFSC 볼더 경기에서 보여주는 실시간 스코어보드입니다. 순위에 따라 나열되어 있으며 오른쪽 네모 칸은 각 선수들의 스코어 카드입니다. 각 칸은 문제 개수(준결승 4문제) 만큼 있으며, 처음에는 빈칸이었다가 선수가 존을 획득하면 절반이 채워지고 완등을 하게 되면 전체가 채워집니다. 직관적으로 많이 채워진 쪽이 더 성적이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시도 횟수는 표시되지 않아 정확한 순위 예측을 할 수 없는데요. 그래서 저는 IFSC WC Series라는 앱을 사용합니다. IFSC에서 주관하는 경기에 대한 결과를 조회할 수 있으며 경기 중에는 실시간으로 반영됩니다. 라이브 중계를 보지 못하는 상황일 때 이것으로 결과만이라도 조회할 수 있기도 하고 자세하게 시도 횟수까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래는 앱 링크와 위 이미지와 같은 준결승 결과 화면입니다.

iOS: https://apps.apple.com/us/app/ifsc-wc-series/id796061884
Android: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org.ifsc.boulder14&hl=ko&gl=US

올림픽에서도?

Image by IFSC

지금까지 IFSC 볼더링 경기 점수 시스템에 대해 알아봤는데, 클라이밍을 알고 즐기는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이밍을 모르는 대중들 입장은 조금 다를 텐데요. 그래서 다음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서는 지금보다 더 직관적인 새로운 방식의 점수 시스템이 적용된다고 하며, 이런 행보에 맞춰 IFSC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만 등반을 시작하면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 등반을 이어갈 수 있었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제한 시간이 되면 즉시 내려와야 하는 규칙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2014년 스위스 그린델발트 월드컵 결승에서 일본의 레이 스기모토 선수가 종료 20초 전 등반을 시작한 후 완등 전 어려운 밸런스 동작을 성공해 내는데 2분이 넘는 시간을 소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https://fb.watch/d_mg5Byc-5/). 아마도 이런 식으로 경기 진행을 지연 시키는 것이 가능한 점은 당시 클라이밍이 올림픽에 정식 종목이 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의 불안 요소였을 것입니다. 전 세계로 중계하는 올림픽 경기에서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거니까요.

아직은 이 시스템이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니 조금은 생소할 수 있지만 친구들과 실제 경기를 보며 열심히 토론하고 분석하다 보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월드 클래스 대회 경기도 더욱 몰입해서 즐기시길 바랍니다.